1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현실에서 겪는 문제, 갈등, 선택의 순간들 있습니다. 그런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늘 마음의 부담을 갖고 살아갑니다. 무슨 부담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인생이 되어야 할텐데 하는 부담 말입니다.
그러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봅시다.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하며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나 악합니다. 선하게 행동하면 사람을 쉽게보고 함부로 대하는 세상입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선을 행하기 보다는 남들과 동일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겪는 인간관계 속에서 남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나도 이기적으로 하고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에게 나도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처럼 진리를 향한 열정도,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찾아보기 힘든, 무표정하고 냉랭한 교회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하면서도 다시 말해, 진리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
[갈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 we reap what we sow.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의 자연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그 안에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법칙들(열역학 제1,2법칙, 작용 반작용, 만유인력의 법칙 등)도 만드셨습니다. 그중 본문에서는 심는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인류는 이 법칙 아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세상은 큰 혼돈 속에 빠질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여러분은 매일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성경은 어디에? 무엇을? 심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심는 씨앗을 1차적으로 물질(돈)로 볼 수 있고 심는 밭은 육신과 성령으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육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우리의 물질을 심을 수 있고 영적인 일의 향상을 위해 우리 물질을 심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의 할 점은, 일단 심으면 수확물을 바꿀수 없다는 점입니다. 씨를 뿌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유한하기 때문이죠.
[갈6:8]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이땅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들입니다. 온갖 자기 계발서, 돈 잘 버는 법, 성공비법, 건강관리, 문화생활 등등 이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이렇게 한 결과는 어떨까?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성취합니다. 이것이 자연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일상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있는데 ‘심는대로 거두는 원리’에 따르면 당장 내 앞에 쌓여 있는 일들을 처리하는데 시간과 돈을 쓰는게 지혜로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원 특강시간과 예배시간이 겹쳤을 때 개인 스케쥴과 예배, 기도시간이 겹쳤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 시간에 도서관 공부 vs 교회 예배참석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장사하고 돈버는 사람 vs 예배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시험을 더 잘보고 누가 돈을 더 많이 벌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세상 것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더 힘을 쏟아야 된다. 복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라. 라고 대답합니다. 맞는 말일까요?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경적으로 맞는 말도 아닙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시험은 확률적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한 사람이 잘 볼것이고 돈은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벌 것입니다.
3
[갈6:7]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팥을 심어 놓고 콩이 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외치는건 어쩌면 하나님을 조롱, 시험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학원 특강 안듣고 도서관에 안가고 예배에 참여한다면 분명히 그 시간만큼 손해 보는 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 시간만큼 공부를 안했으니 성적이 떨어질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예배에 참여하고 밀린 공부도 하지 않은체 기도만 하고 있다면 성적은 더욱 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선을 행하고도(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진리의 말씀을 실천,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등) 그 일로 인해 세상에서 얻은 결과로 인해 기쁨을 잃고 낙담하게 됩니다.
난 크리스천으로서 선을 행하려고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려고 애를 쓰는데), 현실에서 결과는 왜 이렇지?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하고(다시 말해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삶) 기쁨을 잃지 않을수 있는가?
원리1. 주님을 섬기는 동기를 분명하게 하고 남들보다 2배 더 일해라
8절 후반에 보면,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but he that soweth to the Spirit shall of the Spirit reap life everlasting.
성령에게 심는다는 건 구원받은 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영광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쓰기 보다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영원한 세계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면 분명히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선을 행한 일들에 대한 열매, 성령님의 열매를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둘지도 모른다, 거두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고 거두리라 라고 확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6:9] 우리가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말지니 우리가 기진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두리라
여러분의 삶에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할 때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먼저 점검하기 바랍니다.
공부냐? VS 예배냐?의 문제에서 예배를 하나님께 하기로 결정했다면, 주님을 섬기는 것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제 주님을 섬기는 동기를 분명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반드시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동기가 분명하다면 이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들보다 두배 더 열심히 밀린 부분을 채우고 공부하고 일해야 합니다.
4
원리2. 모든 사람에게 긍휼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
자! 그럼 이렇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속에 벌어지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다음 10절에서 그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10절) 그러므로 우리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집안 사람들에게 할지니라.
세상 사람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선한것은 선하게 악한것은 악하게 갚기(보통사람) ② 선을 악으로 갚기 (악한 사람) ③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들(그리스도인/ 롬12:18-21)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히13:16] 더욱이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느니라.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하는 선한일이란 사실, 그가 주님께 드리는 영적인 희생을 의미합니다.
[마5:16] 이와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빛을 비춘다는건 말이 아닌 행위(work)을 말합니다.
일상 가운데 여러분의 인간관계 생각해 봅시다. 이유 없이 나에게 까칠하게 굴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반드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향해 이런 생각이 종종 갖게 됩니다. ‘저런 사람이 나의 선한 행위를 받을 자격이 되나?’
나도 까칠하게 대하고, 냉담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인지상정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에게 까칠하고, 나를 시기 질투하고, 힘들게하는 사람들에게도 선한 행위로 빛을 비춰야 하는가? 그런데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봅시다.
구원받은 자라고 하면서도 주님을 힘들게 하고, 주님을 까칠하게 대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나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희생의 선한 행위를 받을 자격이 되는가? 여러분은 자격이 있나요?
눅10:25-37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만난 사람 비유 속에 등장하는 제사장, 레위 사람은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유대인이 개처럼 여기는 사람)사람이 강도만난 유대인을 돌봐줍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누가 강도들을 만난 자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사가 대답합니다. “그에게 긍휼을 베푼 사람이 이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긍휼이 필요합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겨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반응은 내 몫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반응에 좌우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상황속에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기회가 되는대로 선을 행하는 것이 성령에게 심는자입니다. 그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성경 Q&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이 말하는 뱀 (2) | 2023.04.20 |
---|---|
구약과 신약의 믿음(faith)은 다른가? (0) | 2023.04.20 |
신약교회에서 헌금의 원리 (0) | 2023.04.19 |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는 무슨 말인가? (0) | 2023.03.28 |
the Holy Ghost와 the Spirit의 번역차이(성령님과 성령) (0) | 2023.03.28 |